백광홍은 전라남도 장흥 출신으로 본관은 해미, 자는 대유, 호는 기봉이며, 아우 광안․광훈․광성 등 4형제 모두가 뛰어난 문장으로 칭송받았다. 1552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로 임명되고, 1553년 시부 회에서 장원하여 선시 십 권을 상으로 받고 호당에 뽑혔다. 그 뒤 1555년 봄에 평안도평사가 되었으나 이듬해 병이 들어 귀향도중 전북 부안에서 객사하고 말았다. 이때 나이 35세였다.
관서별곡은 관동별곡보다 25년이나 앞서 지은 작품으로 기행가사의 효시가 되어 후대 기행가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555년 평안도평사의 벼슬을 제수 받고, 관서지방을 향해 출발하는 것부터 부임지를 순시하기까지의 절경과 생활상․자연풍물 등 기행 노정을 운치 있게 그려낸 것으로 국문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한국가사문학관
(57392)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가사문학로 877.
061)380-2700~3
백광홍은 전라남도 장흥 출신으로 본관은 해미, 자는 대유, 호는 기봉이며, 아우 광안․광훈․광성 등 4형제 모두가 뛰어난 문장으로 칭송받았다. 1552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로 임명되고, 1553년 시부 회에서 장원하여 선시 십 권을 상으로 받고 호당에 뽑혔다. 그 뒤 1555년 봄에 평안도평사가 되었으나 이듬해 병이 들어 귀향도중 전북 부안에서 객사하고 말았다. 이때 나이 35세였다.
관서별곡은 관동별곡보다 25년이나 앞서 지은 작품으로 기행가사의 효시가 되어 후대 기행가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555년 평안도평사의 벼슬을 제수 받고, 관서지방을 향해 출발하는 것부터 부임지를 순시하기까지의 절경과 생활상․자연풍물 등 기행 노정을 운치 있게 그려낸 것으로 국문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