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전시물

소쇄처사 양산보

양산보는 담양군 남면 지석마을 출신으로 조선 중기 민간 정원의 백미로 꼽히는 소쇄원을 조성한 인물이다. 자는 언진, 호는 소쇄처사이며 본관은 제주이다.

15세에 정암 조광조에게 수학하였으며, 17세가 되던 1519년 현량과에 합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 하여 관직을 받지 못하였다. 그해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화순 능주로 유배되고 죽음을 당하자 벼슬에의 꿈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와 소쇄원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소쇄원은 조선 중기 호남 사림을 이끌었던 하서 김인후․서하당 김성원․고봉 기대승․제봉 고경명․송강 정철 등 선비의 교유 장소로 널리 이용되어 정치․사상․학문 등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특히 양산보는 하서 김인후와 두터운 친분으로 사돈의 인연을 맺었으며, 하서 김인후는 소쇄원 48경을 시제로 하여 소쇄원 48영을 창작하여 소쇄원의 명성을 알렸다. 소쇄원은 양산보의 아들 자징과 손자 천운 등 3대에 걸쳐 완성되었다.

이 소쇄원을 만든 주인 양산보는 후손에게 “어느 언덕이나 골짜기를 막론하고 나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이 동산을 남에게 팔거나 양도하지 말고 어리석은 후손에게 물려주지 말 것이며, 후손 어느 한사람의 소유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유훈을 남겼다고 한다.

한국가사문학관
(57392)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가사문학로 877.
061)380-27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