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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앙정(俛仰亭)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의 자는 수초, 호는 기촌, 면앙정 또는 면앙으로 시호는 숙정이다. 1493년 담양군 봉산면 기곡리에서 출생하였다.

1519년 별시문과(別試文科) 을과(乙科)에 급제하여 이후 1547년 주문사로 북경에 다녀왔으며 이후 개성부유수를 거쳐 1550년 이조판서에 제수되었다. 1569년 대사헌, 한성부판윤이 되었으며, 의정부 우참찬 겸 춘추관사를 지내다 사임하고 고향 담양에 머물렀다.

만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에 내려와 1533년에 지은 면앙정을 복축하고 퇴계 이황을 비롯하여 강호제현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양성하여 문인들이 신평 선생이라 불렀다. 그의 정계생활은 그의 군자다운 인품과 고매하고 원만한 대인관계 때문에 순탄하였다.

면앙정 송순의 문하에서는 제봉 고경명, 고봉 기대승, 백호 임제, 송강 정철 등이 배출되어 한국 시가문학사를 찬란하게 빛냈다.

그의 문학작품으로는 가사(歌辭) 『면앙정가(俛仰亭歌)』를 비롯하여, 『자상특사황국옥당가(自上特賜黃菊玉堂歌』 1편, 잡가(雜歌) 2편, 『면앙정단가(俛仰亭短歌)』, 『오륜가(五倫歌)』 5편 등의 시조와 600여 수의 한시가 그의 문집에 기록되어 있다.

송순은 1524년 그의 나이 32세 때 누정 창건의 뜻을 세우고 마을의 곽씨로부터 정자터를 구입해 두었다. 이후 10년이 지난 1533년에 중추부사 대사헌의 직을 그만 두고 향리인 담양에 내려와 있으면서 면앙정을 건립하였다. 이때 송순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면앙정 삼언가>와 시조 1수를 남겼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로 한 간 지어내니

반간은 청풍이요 반간은 명월이라

강산은 드릴데 없으니 둘러보고 보리라

 

이후 63세로 선산부사를 마치고 66세로 전주부윤으로 가기까지 약 4년 사이에 면앙정이 너무 초라하고 퇴색한 모습이 안타까워 중창하게 되었다. 이때 고봉 기대승의 <면앙정기>, 백호 임제의 <면앙정부>, 임억령․김인후․고경명․박순의 <면앙정 30영> 등이 지어지고 송순은 <면앙정가>를 창작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면앙정은 정면3칸, 측면2칸이며 전면과 좌우에 마루를 두고 중앙에는 방을 배치하였다. 1979년, 2005년 해체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2년 8월 7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었다.

한국가사문학관
(57392)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가사문학로 877.
061)380-27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