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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정(松江亭)

송강정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 기와지붕 건물이다. 가운데 방이 있는 구조이며, 정면엔 송강정(松江亭), 측면엔 ‘죽록정(竹綠亭)’이란 현판이 있다.

서인이었던 송강 정철은 선조17년(1584)에 대사헌(大司憲)이 되었으나 동인들이 합세하여 서인을 공박함이 치열해지자, 마침내 양사(兩司)로부터 논척(論斥)을 받아 다음해 조정에서 물러나 담양 창평으로 돌아와 4년 동안을 평범한 인간으로서 또한 시인으로서 은거했다. 이 4년 동안에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이라는 불후의 가사가 탄생했다.

『송강별집(松江別集)』권7 ‘기옹소록’에는「전후 사미인곡 재 차향 창평 시 소작 불기 모년 사시 정해 무자 연간이(前後思美人曲 在此鄕(昌平) 時所作不記某年 似是丁亥戊子年間耳)」라는 기록을 보면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제작은 창평으로 돌아온 해로부터 2~3년 뒤인 1588년 전후로 추정된다.

『사미인곡』은 제목 그대로 연군지정(戀君之精)을 노래한 가사이다. 그 수법은 한 여인이 남편을 이별하고 사모하는 정을 읊은 것인데 송강 자신이 여인이 되고 그 남편이 선조가 되는 상황을 설정하여, 충신이 임금께 충정을 표현한 노래라 하겠다.

송강정은 세월이 지나면서 퇴락하여 한때는 그 터만 남아 있었는데 1649년 후손들에 의해 중건하였다. 이런 사실은 정철의 6세손 정재가 쓴 <송강정 유허 수리시서>라는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자 옆에는 1969년에 세운 <송강 정선생 시비>가 서 있고, 여기에는 그의 <사미인곡>이 새겨져 있다.

송강정은 1972년 1월 29일 인근 식영정, 환벽당 등과 함께 <정송강 유적 송강정>으로 전라남도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으나, 식영정이 2009년 9월 18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57호로 승격 지정되고, 환벽당이 2013년 11월 13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07호로 지정되면서, 현재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1호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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