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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옥헌원림(鳴玉軒苑林)

명옥 헌원림은 조성 중기 오이정(吳以井)이 요절한 아버지 오희도를 위해 조성한 초가집에서 시작된다.

오희도(吳希道)의 자(字)는 득원(得原), 호(號)는 명곡(明谷)으로 1602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3년 알성문과(謁聖文科)에 합격하여 예문관(藝文館)의 관원으로 천거되었고, 기주관(記注官)을 대신하여 어전에서 사실을 기록하는 검열(檢閱)에 제수되었으나 30대에 요절하였다.

오희도(吳希道)의 넷째 아들 오이정은 자연경관이 좋은 도장의 계곡에 초가집(초정)을 짓고 이를 아버지를 추모했다. 오이정은 호(號)를 장계(藏溪)라 했는데 그가 지은 초정이 퇴락하자, 그의 아들 기석이 다시 초정을 지었다. 그후 기석의 아들 대경이 기와로 정자를 복축하였으며, 대경의 아들 현주가 정자 3개, 연못 3개를 만드는 등 원림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 뒤 현주의 아들 정원과 한원이 문과에 급제하여 현달하자 배롱나무 등을 식재하였다는 사실을 오상순의 <병암유고>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쟁반에 옥이 구르는 것과 같이 맑은 물소리가 낭랑하게 들린다’는 명옥헌(鳴玉軒)은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모아 집수하는 연못이 정자 앞에 파져 있고, 둘레에는 적송(赤松) 및 자미나무 등의 조경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옥헌 뒤편에는 오장원과 오한원이 오희도, 양산보 등 창평 선비를 배향한 도장사(道藏祠)를 건립했는데 이에 명옥헌을 도장정(道藏亭)이라고도 부른다.

 

명옥헌 원림은 주변의 자연경관을 차경(借景)으로 도입한 정사(亭舍)중심의 자연순응적인 전통정원양식이지만 명옥헌 정자를 중심으로 위 아래에는 조선시대 전통적인 ‘방지중도형(方池中島形)’의 연못 곧 네모난 연못 가운데 섬 모양을 만든 구성방식을 도입하였다.

먼저 명옥헌의 동쪽에 자리잡은 아래 연못은 동서 16m, 남북 11m 크기인데 1979년 여름에 조사 발굴된 바에 의하면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는 계류의 물을 끌어 채운 것으로 북과 서쪽에 자미나무가 심어져 있다. 계류의 바위에는 우암 송시열이 썼다는 ‘명옥헌 계축’이라는 글씨가 암각되어 있다. 명옥헌의 다른 연못은 북쪽에 위치하며 그 고저차는 약 6.3m이다 동서너비 약 20m, 남북길이 약40m 크기를 갖는 방지의 중심부에는 원형의 섬이 있으며 주위에 약 20그루의 자미나무가 심어져있는데 수령은 100여년 정도이다.

명옥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지붕의 정자로 집의 구성은 외부로 툇간을 돌리고 그 중앙에 방을 둔 중앙실형(中央室形)이다. 방에는 구들을 두었고 평천장을 하였다. 마루의 외곽에는 평난간을 두었다. 명옥헌은 매년 여름이면 붉은 백일홍으로 별천지를 만든다.

1980년 6월 2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44호로 지정되었으나, 2009년 9월 18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58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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