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제가사

대명복수가(大明復讎歌)

<대명복수가>는 1824년(순조 24) 창헌(蒼軒) 조우각(趙宇慤)이 지은 가사로 홍재휴(洪在烋) 소장본, 김광순(金光淳) 소장본, 안영창(安永昌) 소장본 등의 이본이 있다. 홍재휴 소장본과 김광순 소장본은 표제가 『동음(東音)』으로 되어 있다. 안영창 소장본에는 작자를 영천(永川) 조진사(趙進士) 우관(宇寬)으로 밝히고 있으나 우관은 필사 과정의 오류로 보인다. <대명복수가>는 영천(永川)을 중심으로 경북 일원에 전하여 애송되던 가사로, 특히 영천 지방의 고로(古老)들이나 부녀자들은 이를 암송하는 이도 있음을 보아 창헌(蒼軒) 조우각(趙友慤)의 유작 중에 가장 널리 전송된 장편가사라 하겠다. 이 작품은 청나라를 쳐서 명나라의 복수를 하겠다는 이상을 읊은 작품으로 내용은 명나라가 청나라에 의하여 멸망된 것을 슬퍼하며, 병자호란으로 인하여 우리가 당한 치욕을 설욕하지 못한 것을 통탄하였다. 명의 멸망을 비탄하고, 호란(胡亂)이 끼친 민족적 치욕을 설욕치 못하는 유분과 통한을 격렬한 어사로 도도히 엮어가며 구화신을 통격하고 중국과 동국 일대의 충의열사를 모두어 명나라 황실을 회복하고 병자년의 성하맹을 설치해 보자는 것이다. 또한, 강화를 주장한 최명길(崔鳴吉) 등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중국과 우리 나라 역대의 충의열사들을 모두 동원하여 청나라를 쳐부수는 쾌재를 노래한 작품이다. 그러나 회고적이고 보수적인 사대부 작자의 의식이 그대로 표현되어 그 문학적 형상화에서는 한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임진록>과 같이 전쟁으로 입은 상처에 대한 보상심리와 당시 팽배하였던 북벌의지를 배경으로 창작되었다는 견해가 있으나, 두 차례의 호란이 있은 다음 근 200년 뒤에 지어진 것을 감안할 때, 이전에 비하여 급속도로 진행되는 사회변화의 요인을 명나라의 멸망에서 찾고, 그 회복을 바라는 데서 지었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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