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제가사

도덕구가

이 작품은 작자 및 제작시기가 미상인 도덕가사로 공자의 사상을 주로 노래하면서 특히 그의 제자들 얘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집 구경 가자는 노래로 시작하면서 많은 집들이 있지만 공자의 집만큼 좋은 집이 어디 있느냐? 하고 유학의 학문을 권유하며 노래하고 있다. 공자(孔子)는 중국 유학(儒學)의 종주로, “사직이 수시로 바뀌고 군신의 지위가 수시로 변하던(社稷無常奉, 君臣無常位)” 춘추말년에 활동한 몰락한 귀족출신 사상가이다. 사회 대변동 속에서도 구제도를 보호, 구제하고 또 구제도에 대한 ‘손익’을 따졌으며, 그것이 사회조류와 서로 부합하도록 힘썼다. 그는 사학을 처음 창립하여 제자가 3천여 명이었고, 몸소 육예(六藝)를 통달한 자가 70여 명이었다. 교학방법에서 그는 “배움에 싫증내지 않고 남을 가르침에 게을리 하지 않고(學而不厭, 誨人不倦)”, “발분하지 않으면 계도하지 않고 답답해하지 않으면 일러주지 않으며(不憤不啓, 不悱不發)”,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일련의 교학방법을 형성하였다. 주(周), 노(魯), 송(宋), 기(杞) 등 옛 나라의 문헌자료를 수집하고 ����시(詩)����, ����서(書)����, ����예(禮)����, ����악(樂)����, ����역(易)����, ����춘추(春秋)����를 순서대로 배열 정리하여 학생을 교육할 교과서로 만들었다. 그가 창립한 중국 역사상 최초의 정식 학파가 유가(儒家)이다. 이와 같은 가르침 아래 70여명의 공자 제자들은 당시 일정한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될 수 있게 해주었다. 특히 공자의 수제자(首弟子)라 할 수 있는 안연(顔淵)은 공자보다 먼저 죽었지만 그가 보여준 득도(得道)의 경지는 많은 가르침의 표본이 되고 있다. 특히 그가 보여준 ‘단표누항(簞瓢陋巷)’, ‘극기복례(克己復禮)’, ‘앙지미고 첨지재전 홀연재후(仰之彌高 瞻之在前 忽然在後)’ 등은 안연만의 독특한 득도의 모습으로서 여타의 제자들과 차별성을 가진다.
한국가사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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