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제가사

도산별곡

<도산별곡(陶山別曲)>은 조선조 후기의 염와 조성신(恬窩 趙星臣, 1765〜 1835)이 제작한 양반가사이다. 이는『노계선생문집(蘆溪先生文集)』중간본(광무 8년, 1904)에 수록됨으로 인해, 한때 노계 박인로(朴仁老, 1561〜1642)의 작으로 오인되기도 하였으나, 이동영(李東英)· 이가원(李家源) 등의 고증에 의해 그 작자가 염와임에는 이론이 없는 편이다. 아울러 가사의 원전은 주로 이가원 소장본에 의해 학계에 널리 알려져 왔다. 본 원고에서 소개하는 <도산별곡>은 이의 이본으로서 옛날 한지(韓紙)에 필사한 두루마리 본에 의해 전승된 것이다. 이씨본과 가사문학관 본의 이 양자는 작품 구성의 행과 구를 비롯하여 가사 내용에 이르기까지 거의 일치하여 동일 가사임은 의심되지 않는다. 그러나 두 이본 간에는 사설을 형성하는 낱말의 표기체계가 전적으로 상이하다. 즉 이씨 본은 한자어의 표기를 일률적으로 한자(漢字)만으로 한 사설의 전개임에 대하여, 가사문학관 본은 한자어를 전적으로 그 독음에 따라 한글만으로 표기한 순 한글체의 서술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한자어를 이해하는 필사자의 안목과 독음에 대한 구습(口習), 또는 조사구(措辭句)의 자의적(恣意的)인 선택에 따라 전자와 다른 표현구가 적지 않으니, <도산별곡> 이본의 전후 양자는 같은 노래임을 부인할 수 없으면서도, 다음의 예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작품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거리감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 이씨 본의 예 : 當年의 杖屢所요 後世의 俎豆所라 年末 後學이 隣邑의 生長하야 門庭은 못밋텨도 江山은 咫尺이라 遺書를 誦讀하고 高風을 想像하야 百里 煙霞를 指點하미 오래더니 * 문학관 본의 예 : 당연에 장구슈요 후셰에 조두지라 연말 후학이 인읍 의 장하여 문졍은 못밋쳐도 강은 짓쳑이다 유서랄 송독하고 고풍 을 상〃하니 백이 언하의 지점한지 오래더니 이로 미루어 보면 전자는 후자를 먼저 접하고, 주로 한자어를 올바르게 수정한 이본인 듯하고, 후자는 먼저 전자를 접하고 이를 필사하면서 이렇듯 순 한글체로 남긴 듯하다. 때문에 두 이본 중 원전을 지목하는 데는 더 두고 숙고해야 할 것이다. 한편, 여기에서 소개하는 <도산별곡>의 형식을 사설의 음수율을 바탕으로 정리하면 이는 3· 4조 위주의 전개로서, 총 59행 119구 구성의 가사로 파악된다. 그리고 이 가사의 내용은 이미 학계에 주지된 바와 같이 이황 선생이 생장(生長)하던 곳 방문으로부터 시작하여, 임자년(1792) 3월에 임금의 은덕으로 예관(禮官)이 도산서원(陶山書院)에 이르러 치제할 때, 당시의 광경과 도산서원의 승경, 아울러 이황의 행적과 시가를 추회하고 그의 덕을 사모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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